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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리퍼는 안 맞아, 대신 트라우마는 극복했으니.

    약 일여 년 전 비 오는 날 슬리퍼를 신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계단에 고인 물을 밟고 굴러떨어져 오른팔의 근육이 싹 끊어진 경험이 있다. 수술과 입원, 재활을 포함하여 약 석 달 정도를 고생하였는데 그 이후 나는 트라우마로 인해 계단을 손잡이를 잡지 않으면 오르내리는걸 굉장히 불안해하게 되었고, 특히 비 오는 날엔 계단만 보면 몸이 싸해질 정도로 약간의 공포증이 생겼다. 또 슬리퍼와 밑창이 미끄러운 신발은('탐스'라던가) 되도록 신지 않게 되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그 당시 굉장히 위험하게 굴러떨어진 상황이었고, 만약 팔이 아닌 목이나 허리 쪽이 먼저 지면과 닿으며 충격이 가해졌다면 최소한 골절이나 마비 혹은 식물인간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찔하다.

    그날 이후 난 여름에도 슬리퍼나 샌들(얘는 무슨 죄)을 신지 않았을 정도로 늘 운동화나 로퍼류만 신고 다녔고, 걸을 때 사뿐사뿐 걸으며 바닥을 조금 강하게 딛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갑자기 슬리퍼를 신고 나가고 싶은 충동이 막 일었더랬다. (도대체 이게 무슨) 그렇게 약 1년 만에 신발장 속에서 슬리퍼를 꺼내서 사고 이후 처음으로 슬리퍼를 신고 잠시 가까운 편의점을 다녀왔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차림이란 게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너무 오랜만에 신다 보니 매우 어색했다) 아 이렇게 트라우마가 극복이 되는 것이구나 하며 스스로 굉장히 기뻤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자꾸만 발가락이 따끔거린다. 뭔가 싶어서 보니  세번째 발가락 위쪽이 슬리퍼에 쓸리는 바람에 까져서 상처가 나 있었다. 아... 그렇게 슬리퍼는 다시 봉인

    발가락이 너무 아린다. 하지만 트라우마는 조금 극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