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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후기


    #리뷰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나오는 수용소의 실상 자체는 영화에서 별로 나오지 않지만, 그 시대상에 대한 묘사와 감정선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나를 압도했다.

    영화 속에서 스필만과 그의 동생이 식사 자리에서 다투는 장면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들의 대화 자체가 잊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차마 두 사람의 주장 모두 옳다 그르다는 판단이 무의미 했기 때문이다.(모두 옳았다.) 건너편 건물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치가 들어와서 일가족을 말살시키는 장면을 창문너머로 지켜봐야 하는 극한의 공포 속에서 말을 함에 있어 표현이 중요하다느니, 부드럽게 상대의 기분을 헤아리며 말을 해야 한다.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거니까.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며 시대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보단 그저 영화적 장치를 잘 가미한 정크푸드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피아니스트는 정말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했을 때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느꼈을 감정선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제대로 살린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인간들이 극한에 몰렸을 때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여러 집단의 군상을 보며 그때마다 부류를 구분하곤 했는데, 실제로 피아니스트에선 그 부류가 다른 영화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극명하게 갈리고 또 생존을 위해선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이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인류는 언제까지 동족이 동족을 말살하고, 인종이 인종을 말살하고, 종자가 종자를 말살하며, 종교가 종교를 말살하는 이런 무의미하고 극악무도한 저급한 행위를 자행해야 하는 걸까?

    그가 포도잼을 먹고 황홀해 하던 표정, 마지막에 피아노를 치며 미소짓던 그의 옆 모습이 얼마나 슬퍼 보였는지 당분간 그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다.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