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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大望) 18~21 - 요시카와 에이지(무사시 篇)

    대망 18
    국내도서
    저자 : 요시카와 에이지 / 박재희역
    출판 : 동서문화사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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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 19
    국내도서
    저자 : 요시카와 에이지 / 박재희역
    출판 : 동서문화사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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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 20
    국내도서
    저자 : 요시카와 에이지 / 박재희역
    출판 : 동서문화사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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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망 21
    국내도서
    저자 : 요시카와 에이지 / 박재희역
    출판 : 동서문화사 200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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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 무사시의 오륜서 중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더라도 잠자코 있으면 쉽게 벼슬 자리가 나설 까닭이 없지요.

    “그래도 모르겠소? 그대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면 너무 강하다는 그 한 가지 뿐이오. 그런데 그 강함을 고집하면 그대는 서른 살까지도 살 수가 없을 거요. 이미 오늘도 생명이 없어질 뻔했었소. 이런 일로 해서 자기라는 인간을 어떻게 지속시켜 나가겠나 말이오?”

    믿는 것은 허리에 찬 한 벌의 칼뿐.

    가령 너의 용기도 그렇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네 행동은 무지(無知)에서 나온,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만용이었다. 인간의 용기는 아니야. 무사의 강함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무서운 것의 무서운 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 인간의 용기이며, 생명을 주옥같이 소중히 여기고 그리고 진짜 목숨을 걸고 한 일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것이 참다운 인간이란 말이다. ……내가 애석히 생각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너에게는 선천적인 완력과 용기는 있지만 학문이 없다. 무도의 나쁜 점만을 배우고 지덕(智德)을 닦으려 하지 않았다. 문무(文武) 두 가지 길이라지만 이도(二道)란 흔히 있는 그러한 길이 아니라, 두 가지를 포개어 된 오직 하나의 길인 것이다.

    호랑이와 사람이 씨름은 할 수 없다. 하지만 호랑이는 역시 인간 이하라 별 수 없는 것이지.

    쓸쓸한 마음은 배고픔과 같은 것이었다. 피부 밖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 만족할 수 없는 것을 느낄 때 쓸쓸함이 몸에 닥쳐온다.


    #리뷰

    지금까지 차마 대망을 펼치기가 어려웠던 것은 단순히 그 두께와 분량에 압도되어 읽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읽어야겠다는 마음만 먹고선 그 시기를 점치던 중에 이번 추석 연휴는 복잡한 인물 관계를 파악해가며 대망을 숙독하기에 제격이었고 연휴를 기회 삼아 대망의 무사시편 완독을 결심했다. 여기서 무사시편을 읽기로 결정한 이유는 대망은 36권 전체가 한 인물의 서사시가 아닌 여러 인물을 다루는데 그중 가장 분량이 적고, 만화 배가본드를 통해 친숙한 무사시 편(18~21)을 읽는 게 접근성이나, 달성 가능성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그렇게 월요일(2日)부터 읽기 시작한 대망을 오늘(7日)에서야 마무리 지었으니 추석을 제외하고 꼬박 닷새를 대망과 함께한 셈이다.

    난 대망을 읽는 내내 나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었는데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단어가 아름답고 조화롭게 쏟아지는지 감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한 적은 없지만, 일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진한 표현력과 문체에 매료되어 그 잔향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배어 있는데 대망 또한 읽는 내내 그 짙은 표현의 향기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또 중간중간 아주 러프하게 그려진 삽화를 보는 재미도 좋았는데 나중엔 그 삽화를 바탕으로 내용을 그려가며 읽느라 더욱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읽는 내내 나는 무사시가 되어 사람의 인연이 얼마나 질기고, 또 얼마나 진득한지 소설임에도 그 묘함을 감당하기 어려웠고, 늘 같은 모습일 것 같은 주변 군상들의 삶이 작은 행동과 섣부른 판단과 태도에 의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관망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었다.

    대망 속에선 굉장히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배가본드를 먼저 보고 대망을 접했기에 인물에 대한 기대나 애정이 있었음에도 만화에서 미화된 고지로의 실제 캐릭터에 대한 애석함이라던가, 마타하치의 끝 모를 형편 없는 시종 잡배 적인 행태라던가, 오스기의 이기적인 아집, 아케미의 부박함을 느꼈으며 천박한 근본은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천박할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사실 그 근본을 바꾸기가 기본적으로 어려워 사람은 변하기 쉽지가 않은 것임을 깨달았다. 혹 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들 순간의 바람 앞에서 살랑거림일 뿐임을 알게 되었달까. 즉 뿌리와 줄기는 그대로인 것임도 알게 되었다.

    대망을 읽으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동일인이 번역했음에도 권수가 넘어가면서 이름의 표기나 말투가 바뀌는 문제가 너무 많았는데(조타로, 조따로, 다쿠앙, 다쿠안, 단제에몬, 다로자에몬, 반말하다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는 등) 역자가 요즘 사람이었다면 아웃소싱을 주었겠거니 하고 별 볼 일 없는 인물이겠거니 했겠지만 약 50년 전에 번역이 이뤄진 작품이므로 번역이 나쁘다기보단 출판사의 검수가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부분은 앞으로도 개선될 가능성이 작은데 동서 문화사의 대망은 해적판이라 수정을 가하면 출판할 수 없기에 오류를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망을 읽을 사람들이라면 이 부분을 참작하여 보심이 좋겠다.

    개인적으로 이번에 대망을 읽으며 꽤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고, 또 방대한 분량을 소화하다 지쳐 중간에 기분 전환을 위해 다른 책을 네 권이나 읽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기가 찰 노릇이다.
    몇 년만 어렸어도 이렇게 조금 있어 보이는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이 정도 책을 읽은 사람임을 자랑하고 싶어 이 책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이니 뭐니 하며 떠들어 댔을 나지만 지금의 나는 대망에 그 정도 평가를 하고 싶지 않다. 큰 기대를 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만큼 재미를 느끼거나 그 세계 속에 푹 젖어 들었다고 말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대망을 읽은 것이 추석 연휴 시간 동안의 최고의 성과라고 생각하며, 올해의 독서라이프 중 눈에 띄게 보람찬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나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