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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보급판 문고본)
    국내도서
    저자 : 가와바타 야스나리 / 김진욱역
    출판 : 범우사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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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

    현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끝자락은 이미 하얘졌다. 신호소(信號所)에 기차가 멈췄다.

    비춰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지, 소재가 처음부터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아름답기 때문에 슬프고 슬프기 때문에 아름답다.

    어쩐지 마음이 끌려서 그때는 좋아한다는 말도 하지 않던 사람이 언제까지나 그리운가 봐요. 잊혀지지 않구요. 헤어진 뒤에는 그런가 보죠.

    도쿄에서 술집에 나가기 조금 전부터. 그 무렵엔 돈이 수중에 없어서 내 힘으론 일기장을 못 샀죠. 2, 3전짜리 공책에다 자를 대고 가는 줄을 쳤어요. 연필을 가늘게 깎았던지 선이 반듯하게 가지런히 처져 있어요. 그리고 공책 위에서 아래끝까지 깨알 같은 글씨로 꽉 차게 써 있어요. 형편이 일기장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땐 그렇게는 안돼요. 물건을 함부로 쓰니까 붓글씨 연습도 처음엔 헌 신문에다 했는데 요즘은 두루마리에 직접 쓰거든요.

    1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와줘요. 내가 여기 있는 동안은 1년에 한 번은 꼭 와줘요.

    멀리 떨어져 있으면 붙잡기 어려운 것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면 대뜸 그 친밀감이 되살아온다.

    살아 있는 상대라면 마음 먹은 대로 분명히 할 수도 없으니까, 죽은 사람에게나마 분명히 해두는 거예요.

    매일 이러다간 어떻게 돼갈 것인가 하고 고마코는 몸도 마음도 숨겨버리고 싶은 듯해 보였으나, 그 어딘가 고독한 분위기는 도리어 요염한 아취雅趣를 더할 뿐이었다.

    실은 눈 속에서 뽑고 눈 속에서 짜며, 눈 녹은 물로 헹궈서 눈 위에 바랜다. 실을 뽑기 시작해서 다 짤 때까지 모두 눈 속에서 이루어진다. 눈이 있음으로 해서 지지미가 있으므로 눈은 지지미의 어미라고 옛사람도 책에 쓰고 있다.

    정성을 다한 사랑의 소행은 언제 어디에서든 사람을 채찍질하는 것일까?


    #리뷰

    오래전부터 몇 번이고 읽기를 도전하다 중간에 놓았던 설국. 무언가 모를 소중함에 꽁꽁 감춰두다가 그 소중함이 제 뿔에 지쳐 퇴색된 느낌의 책이다.

    설국을 마주했던 첫 느낌을 기억한다. 차갑고, 따스하며, 서늘했던 그 느낌을 기억한다. 퇴색되어가는 소중함을 언제까지고 미룰 수 없어 눈을 뜨고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나가기로 했다.

    설국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일본의 니가타 현으로 일본 최고의 다설지역이다.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외국의 무용 따위를 번역하던 문필가였던 시마무라가 설국에서 고마코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끌리지만, 순간적인 사랑 이상의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그와 동시에 고마코의 연적인 요코에게 빠져들면서 겪는 갈등을 그린다.

    사마무라는 고마코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만 흩뿌렸던 선행(先行) 탓에 더는 다가갈 수 없어 무언의 선을 긋고, 그와 동시에 요코에게 빠져들지만, 그녀의 얼어버린 마음 탓에 다가갈 수 없다. 소설을 읽는 내내 고마코의 애써 밝음이 먹먹했고, 요코의 순수함은 가여웠고, 사마무라의 소심함은 마치 갓 삶은 생면을 그저 물로만 씻어 먹는 싱거운 맛이었다.

    길지 않은 짧은 소설이었음에도 중간에 책을 몇 번이나 덮었는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책이다. 아직 내 혜안이 이 책을 감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십년 쯤 후 나이가 좀 더 들면 다시 한번 그 풍경을 상상하며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참고 : 범우사의 책 대부분이 그렇지만 번역은 일반인이 쉬이 소화하기엔 조금은 속이 답답하다. 읽고자 한다면 다른 출판사의 설국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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