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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날의 행복 - 김소운

    가난한 날의 행복 (보급판 문고본)
    국내도서
    저자 : 김소운
    출판 : 범우사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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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

    먹을 만큼 살게 되면 지난날의 가난을 잊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다.

    지난날의 가난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더구나 그 속에 빛나던 사랑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반드시 부(富)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진부한 일편의 경구만은 아니다.

    담배는 공초 그 분에 있어서는 마음을 털어놓을 둘도 없는 지기(知己)요, 정성을 다해서 위하고 섬긴 상전인 데다 어쩌면 아내 자식의 정까지 겸했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이 아내, 이 자식은 바가지도 긁지 않고 등록금을 조르지도 않는다.

    과실에 대해서 관대해야 할 까닭은 없다. 과실은 예찬하거나 장려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어느 누구가 “나는 절대로 과실을 범치 않는다”고 양언(揚言)할 것이냐? 공인된 어느 인격, 어떤 학식, 지위에서도 그것을 보장할 근거는 찾아내지 못한다.

    어느 의미로는 인간의 일생을 과실의 연속이라고도 볼 수 있으리라

    과실을 범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가 있다 하여 그것을 탓하고 나무랄 자는 누구인가?

    전쟁이 빚어 낸 비극 중에서도 호소할 길 없는 가장 큰 비극은 죽음으로 해서 혹은 납치로 해서 사랑하고 의지하던 이를 잃은 그 슬픔이다. 전쟁은 왜 하는 거냐? ‘내 국토와 내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내 국토는 왜 지키는 거냐? 왜 자유는 있어야 하느냐?…… ‘아내와 지아비가 서로 의지하고, 자식과 부모가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떳떳하게 보람 있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 보람, 그 사랑의 밑뿌리를 잃은 전화(戰禍)의 희생자들……, 극단으로 말하자면 전쟁에 이겼다고 해서 그 희생이 바로 그 당자에게 보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죽은 남편이, 죽은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리뷰

    범우사의 책들을 읽으면 희한하게도 어린 시절 할아버지 방에서 놀았던 그때가 생각난다. 할아버지 방에선 늘 특유의 냄새가 나고, 책이 가득했고, 어린 나를 보시면서 늘 다정한 미소를 지으시며 연필을 한 자루씩 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각설하고 이 수필집을 읽으며 얼핏 기뻤는데 내가 평생 나고 자란 창원을 배경으로 하며, 내가 오랜 시절 살았던 상남이라던가 나에게 늘 익숙한 성주사역이나 경화동이 등장하고, 또 지금의 본가가 있는 진해의 수십 년 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익숙하고 반가운 지명이 나와 수필을 읽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지만 애석하게도 책을 읽으며 그 익숙함과 반가움은 의아함과 불쾌함으로 바뀌었다. 책 속 내용 중 일본을 두둔하거나, 치켜세우는 내용이 있었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 당시 사람치곤 꽤 깬 사람이니 사고가 유연했겠거니 생각하고 넘기려 했으나 그 정도가 지나쳐 결국 책을 모두 읽고 김소운을 찾아보니 민족반역 행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생각해보니 소설의 배경이 된 진해는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일본의 영향으로 발전한 도시였기 때문에 그 잔재가 아직도 도시 곳곳에 많이 남아있음이 생각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진해에는 당시 일본이 물자 보급을 위해 깔아놓은 철로라던가, 일본풍의 건물, 일본인이 지은 서양식 건축물과 그들의 도시 계획이 원주민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는 도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그 당시 심어진 어마어마한 양의 벚나무는 지금은 진해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 되어 아직도 매년 봄 군항제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가장 규모 있는 벚꽃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의 근간이 일본의 도시 계획에 지나지 않았음을 순간적으로 깨닫고 개인적으로 꽤 부끄럽게 느껴졌다.

    자료에 의하면 김소운이 81년 죽기 직전 민족반역 활동이 논란이 되었다고 되어있는데, 79년 박정희의 제4공화국이 막을 내리고 전두환의 80~81년 제5공화국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중간인 80년도에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을 받았다는 건 나로선 정말 다시 한번 그간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민족 반역을 쉬이 생각하고 그 정서나 인식이 밑바닥을 기고 있었는지 실감하고 동시에 통감하게 된 사실 중 하나이다.(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 및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예비명단에 포함)

    개인적으로 민족반역은 무슨 핑계를 대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고, 그 행위는 강력히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라 생각하는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겨우 두 번 다시 김소운의 책을 읽지 않는 것 말고는 없다는 게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프랑스가 독일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 반역자 약 100만 명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민족 반역에 대한 과거사를 청산했는데 왜 대한민국은 그러지 못했는지 그 당시 나라의 지식인들과 어른들이 굉장히 한스럽고 원망스럽다.

    ※ 170820 민족반역자에 대한 경어체 사용이 옳지 못하다고 판단되어 관련 내용을 모두 평어체로 수정하고 '친일'이라는 단어를 '민족반역'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함.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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