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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큐정전(阿Q正傳) - 루쉰

    아큐정전 (보급판 문고본)
    국내도서
    저자 : 루쉰 / 허세욱역
    출판 : 범우사 200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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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

    아큐는 재빨리 패배를 승리로 바꾸었다. 오른손으로 자기 뺨을 연달아 두어 대 힘껏 쳤다. 맞은 데가 후끈후끈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때린 사람은 자신이고, 맞은 사람은 또 다른 자신인 것같이 느껴졌다(아직도 좀 후끈거리지만) 마음이 흡족해져서 자리에 누웠다. 그러자 이내 잠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승리자란 적수가 범 같고 매 같아야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고 하였다. 양 같고 병아리 같다면, 도리어 기운이 빠지는 법이라는 것이다.

    혁명이라는 것도 괜찮은데.’ 아큐는 생각했다. ‘개 같은 놈의 세상, 뒤집어 엎어져라! 빌어먹을, 우라질……. 나도 혁명당이나 되어야지!’

    그는 산기슭에서 굶주린 이리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언제까지나,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그를 따라왔다. 그를 잡아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 그는 얼마나 무서웠던지, 거의 죽어 자빠질 것 같았다. 다행히 손에 도끼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겨우 마음이 좀 든든해져서, 미장까지 단단히 쥐고 왔다. 그러나 그 이리의 눈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았다. 불길하고 또 무서웠다. 두 눈은 도깨비불처럼 번쩍였다. 멀리서 쫓아와, 자기 살을 꿰뚫는 것 같았다.


    #리뷰

    루쉰은 그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모택동이 그의 '신민주주의론'에서 가장 위대한 문학가로 추앙했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주로 루쉰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1927년을 기점으로 전기, 후기로 나뉘며 전기 문학의 의도는 반봉건, 반사교, 반 노예적인 국민성 개조에 역점을 두었고, 후기는 인간 혁명, 제도 혁명에 전력투구하였다. 즉 1927년 그해 말부터 죽을 때까지 문학과 혁명, 코뮤니즘을 위해 세월을 보낸 인물이다.

    내가 봤던 이 책에 나오는 '아큐정전(阿Q正傳), 광인 일기, 풍파, 고향'은 1919~1921 사이의 작품들로 모두 그의 전기 작품들이며. 그중에서도 백미에 속한다. 특히 책의 제목이 된 아큐정전은 사상과 예술성을 인정받고 그의 창작 중 유일한 중편으로서 그를 세계에 알린 거작이며 광인 일기는 중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소설로 유명하다.

    내가 아큐정전을 읽고 머릿속에서 가장 너울거린 부분은 최하층민 아큐의 정신승리법이었다. 늘 실패하면서도 정신적인 만족에 현실을 외면하는 그의 모습이 사실 어떻게 보면 오늘날 서민들이 흔히들 연예인이나 재벌 따위를 보며 '쟤는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니', 실패한 이들을 보며 '저 봐 내 저럴 줄 알았지', 재판이 끝나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가난하고 비겁한 정신승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아큐정전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 즈음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시대적 배경을 가진다. 생활 수준은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비약적인 성장을 어뤄낸 반면, 인간들의 사고방식이라던가, 뼛속 깊이 박혀있는 노예근성과 아집, 자존심을 죽기보다 중하게 여기는 행태 따위를 보면 그 지적 수준은 외려 더 퇴보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본인의 처지를 바꾸려 노력하기보단 늘 편하게 정신승리법을 이용해 본인의 이상을 그려내는 오늘날의 젊은 우리들의 초상과 닮았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모든 스트레스나 문제를 해결하는 절대적인 방법은 그 근원을 파훼 하는 것이라 배웠다. 결국엔 계획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데 그저 편한 대로 생각하고 편한 대로 행동하고 편한 대로 살아 버린다면 그게 바로 현대판 아큐가 아닐까?

    아큐정전을 통해 민중계몽을 목표했던 루쉰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이와 같을 것이다. 단순히 어떤 형태로든 근본을 건드리지 않고 편한 대로 생각하고 정신승리에 도취한다면 그 어떤 혁명도 결국 무력(無力)에 지나지 않을 것이란 것을.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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