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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년의 밤 - 정유정

    7년의 밤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1.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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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절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바다를 모르는 자가 바다를 얕본다. 바다를 얕보는 자, 바다에 데기 마련이었다.

    ‘뭔가를 한다’는 ‘뭔가를 잃는다’와 같은 말이었다.

    “죽은 아이는 다른 아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어느새 휴게소에 다다라 있었다. 승환은 서원을 끌고 전망대로 향하며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사진 속 아이는요.” 서원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예뻤어요. 꼭 살아 있는 것처럼.”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

    남편은 세상에서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처음엔 그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중에야, ‘자기 것’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라는 걸 깨달았지요. 그에게 아내와 아이는 ‘자기 것’의 핵입니다.

    저 젊은 눈동자는 그때 무엇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을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남자는 여섯 살 난 아들과 놀이공원에 갔다. 동물원은 문을 닫았고, 사파리 기차는 플랫폼에 정차해 있었고, 어쩔 줄 몰라 하던 남자는 아들에게 얼음이 든 자판기 콜라를 뽑아주었고, 그때 하늘은 사막처럼 노랬고, 납빛 구름 아래로 눈바람이 불었고, 가로수들은 비올라처럼 울었고, 아들은 노천 게임기에서 뽑은 웃는 해골을 남자에게 내밀었다. 남자는 해골을 받아 쥐고 휘익, 휘파람을 불었다. 황량한 광장에는 남자가 부는 보귀대령의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아들은 팔을 크게 흔들며 남자를 따라 행진을 시작했다. 빠밤, 빠바바 빱빱빱. 빠밤…… 그날처럼, 웃는 해골을 내밀던 여섯 살 오후처럼, 나는 아버지에게 축하 인사를 보냈다. “해피 버스데이.”


    #리뷰

    자꾸만 최근 들어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적기 민망하지만, 소설을 읽으며 스스로 느끼는 점은 등장인물을 정리하고, 파악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이다. 성격상 분석하고 정리하는 걸 좋아하는 내게 책을 읽는 즐거움 외에 무언가 '정리하고 분석한다'라는 재미가 한 가지 더 추가된 셈이다.

    어제 새벽 잠이 안와 뒤척이던 내가 7년의 밤을 꺼내든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일반적인 책 3권은 되어 보이는 두꺼운 분량에 지레 겁을 먹고 던져뒀던 이 책이 어느 날 새벽 문득 궁금해졌을 뿐이다.

    첫 장을 펼치고 지도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리고 한 아이의 불행을 처음 마주할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을 내가 단숨에 읽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조금씩 조금씩 소설이 내 시간을 잠식해감과 동시에 내가 꽤 좋아하는 윤태호 작가의 이끼를 다시 한번 마주하는 기분을 느끼면서 서서히 이 소설도 이끼류(類)가 되어갔다.

    그렇게 흥미롭게 책을 읽던 새벽.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었고 몰입이 강했던지 우습게도 꿈속에서도 내가 이 책을 읽고 두세 갈래로 나뉜 스토리를 검토하며 어떤 스토리가 다음 이야기와 가장 부합하는지를 놓고 혼자 나와 싸움을 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새벽에 눈을 떴다. 

    새벽 다섯 시쯤 눈을 떴을 땐 바깥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열린 창문 너머로 들리는 가을 빗소리와 늘 미지근하고 따뜻한 밝기를 좋아하는 내 방의 적절한 어두움과 늘 틀어두는 잔잔한 베토벤의 선율 속에서 읽는 '7년의 밤'은 마치 내가 그 세상 속에 살아 있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흡입력 있게 나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온종일 시간이 날 때마다 책 속으로 빠져들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현수가 이해되고, 영제를 이해하며, 승환이 이해되고, 또 서원을 이해했던 어둡고 미지근한 오늘의 공기를 난 당분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책을 읽는 게 이토록 즐거웠던 적이 있었던가.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