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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슈슈의 모든 것' 후기


    #리뷰

    이와이 슌지. 우리나라에서는 '오겡끼데스까?'(おげんきですか), '와따시와 겡끼데스'(私は元気です)라는 대사로 유명한 러브레터의 감독이다. 어린시절 나는 러브레터가 아닌 다른 영화로 그의 작품을 접했는데 '피크닉'(1996)과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이다.

    나는 주로 이와이 슌지의 빛을 다루는 기법이나 공기의 탁함을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몽실거리는 느낌과 그만의 특유한 색감을 좋아한다. 특유의 색감이란 많은 일본 영화가 그렇듯 색온도가 낮으면서 약간 대비가 있는 동시에 연둣빛이 굉장히 강한 느낌을 말하는데 이와이 슌지의 영화는 차가우면서 형광빛 도는 느낌과 특히 더 잘 어우러진다.

    리뷰를 작성하기 전에 클로드 아실 드뷔시에 대해서 먼저 서두를 던지고 싶다. 극중 릴리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Arabesque)를 오마쥬 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참고로 클로드 아실 드뷔시(Claude Achille Debussy)의 아내 로잘리 텍시어(Rosalie Texier)의 애칭이 릴리였으며 이혼 후 함께 도망친 엠마 바르덱(Emma Bardec)에게서 태어난 드뷔시의 유일한 혈육의 이름이 클로드 엠마(Claude-Emma)인데 그녀의 애칭이 바로 슈슈(Chou Chou)다. 즉 조강지처와 그녀를 버리고 바람펴서 낳은 자식의 이름을 엮은 것이 릴리슈슈인 것. 그렇기에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드뷔시를 말한다고 볼 수도 있으며 원래 이와이 슌지가 의도했던 숨겨진 제목은 아라베스크(Arabesque, アラベスク)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실제로 드뷔시가 끔찍하게 아꼈던 슈슈는 13세에 사망하는데 이 영화의 시점 또한 13세에서 14세로 넘어가는 시절을 그린다.

    성격이나 살아온 삶이 판이한 그들은 중학교에 진학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렇게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 새롭게 살아갈 줄 알았던 삶이 아닌, 결국 과거에 얽매여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달라져 버린 본인들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진짜 본인을 입증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영혼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그들의 속은 공허해지고 결국엔 모두가 소통의 부재를 겪는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호시노는 '모두가 나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 라고 말한다.

    그런 그들이 유일하게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본인의 목소리를 공유하는 공간이 있는데 바로 릴리의 인터넷 팬 사이트이다. 그 속에서 그들은 진정하게 소통하며 진짜 자신이 된다. 우리는 늘 진짜라고 생각하는 실제의 모습을 본인이라 여기지만, 영화는 거리낌 없이 본인을 표출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의 자아가 실제 본인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던진다. 실제로 이런 부분은 메시지 앱이나 SNS 소통이 더 편한 지금의 우리의 삶과 굉장히 닮아있다.

    이 영화는 그저 사춘기 시절의 성장통 따위를 그린 영화가 아니다. 갑작스레 어른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그들이 겪는 수압 차는 생각보다 컸으며, 꼬인 거미줄 같은 복잡한 감정 속에서 진짜 본인을 찾지 못하고 허우적대다 익사하고 마는 그 시절의 아픔을 표현한다.

    상처가 없는데 아프다. 상처가 있는데 아프지 않다.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