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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감히 타인의 그릇을 재단할 권리를 가졌나?

    사람의 본성은 밑바닥과 꼭대기에서 나온다. 밑바닥에 있으면 그릇이 작아져야 분수에 맞는 것이고, 꼭대기에선 그릇이 커야 합당하다. 그렇기에 다스리는 위치에선 빚을 내서라도 아랫사람을 챙기거나, 아래에 위치한다면 미안해도 때로는 받아야 그릇에 맞게 행동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릇이 작아서 밑바닥에, 커서 꼭대기에 있는것이 아니다. 반대의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릇이란 상황에 따라 언제든 유동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하나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만약 자리가 아닌 정말 그릇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즘 흔히들 착하면 손해 보는 세상이라 말한다. 하지만 그게 악랄하고 눈 부라리며 살아가란 뜻은 결코 아닐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어떤 높이에서든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하며, 일관성 있고 유치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짜는 끝까지 원칙을 고수한다. 고지식한 게 아니다. 소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기에 우직할 수 있는 것이다. 본적도 없는 신을 믿느니 잘못되어 죽을지언정 자신을 믿는 이런 태도를 꿋꿋하게 지켜나가는 사람이라면 그가 진짜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그릇이란 이런 것이다.

    자 그렇다면 그릇과 깊이를 논하는 이들의 그릇과 깊이는 어느 정도인가? 앞서 말한 것 처럼 진짜 그릇이 큰 인물은 입 아프게 떠들거나 표정 굳혀가며 진짜라고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아보지 않을까? 입증하려 떠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생은 늘 결과론적이고, 지금 상황에 대한 해석은 미래의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의 그릇도 지금의 모습만 보고 함부로 판단내릴 수 없는 것이다. 

    나도 그렇지만 타인도 내 그릇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가 감히 타인의 그릇을 재단할 권리를 가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