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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 김현철

    불안하니까 사람이다
    국내도서
    저자 : 김현철
    출판 : 애플북스 201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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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 몸으로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사랑 또한 당신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당신의 내면, 미숙하고 서투른 그 모습조차도 진정으로 껴안을 수 있을 때 그제야 사랑은 비로소 당신을 반기며 찾아올 것입니다.

    무가치감은 진정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를 때 찾아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그 녀석은 정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고 있을 때 찾아오는 일종의 각성 신호입니다.

    스펙 그 자체가 당신의 사랑에 영향을 줄 순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평소 생각한 스펙에 대한 태도입니다. 다행히도 사랑은 당신의 스펙이 변변치 못하더라도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여기에도 물론 조건은 있습니다. 당신이 스펙을 놓고 사람을 판단하는 습관이 있거나 낮은 스펙으로 인해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오로지 스펙으로만 다른 사람들을 평가하고 기억하려 한다면 당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평가될 것입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스펙은 그저 초콜릿의 겉포장지일 뿐입니다. 아무리 포장이 크고 예뻐도 그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이 너무 작거나 맛이 없으면 하룻밤 사이에 비추 항목으로 전락됩니다. 사람들은 포장이 시원찮아도 알차고 맛있는 초콜릿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정신분석학자인 헬레네 도이치Helene Deutsch가 명명한 ‘가장성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가짜 자기를 본질적으로 작동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치 도리안 그레이처럼 굉장히 매력적이고 예의 바르며 인상 좋다는 소릴 자주 듣습니다. 이상적인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을 잘 따라하고 환경에 빨리 적응하여 소위 알아서 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외부에서 받는 찬사와는 달리 이들의 내면은 가난합니다. 따뜻함이 없기 때문이죠. ‘나’라는 존재가 아예 없는 사람들이다보니 숨길 ‘나’조차 없습니다. 진실성이 없는, 아니 있을 수도 없는 대인관계가 전부이다보니 진정한 친밀감은 더더욱 느낄 수 없습니다. 매스컴의 발달로 우리는 이런 자기애성 성향과 더불어 가장성 인격을 표방한 사람들이 추앙받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겉으론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만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허상만 다듬을 뿐, 자신의 참모습은 껴안지 못한 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뿐 아니라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2

    나는 늘 강한척하지만 속은 여리고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 있으며, 나는 늘 웃고 있지만 언제나 속은 우울하고 공허하다. 내가 그렇고, 내 가족이 그렇고, 내 친구가 그렇고 우리 사회가 그렇다.

    어린 시절 나는 많은 부분에서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아이였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라도 보는 날엔 몇 날 며칠을 걱정하는 까닭에 어머니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진료라도 한번 받아 봐야 했었고, 과도한 스트레스로 정신과에 상담을 받은 기억도 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지 않고 상담과 제 의지로 노력하여 지독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많은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 지난 일이고 과거의 추억쯤으로 떠올리곤 하는 아련한 시절이지만 사실은 지금도 가끔 그때의 깊은 우울의 수렁이 종종 나에게 찾아오곤 한다. 단 지금은 그 시절의 작은 사춘기 소년이 아니므로 그런 문제들을 훨씬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여기서 내가 가진 유연한 대처 방법의 하나는 바로 독서인데 맹목적인 읽어 넘김 보단 관련 전문서적을 탐독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된다. 

    '불안하니까 사람이다'도 증상 완화에 큰 도움이 된 책 중 한 권이다. 대학 시절 내 속의 공허를 달래기 위해 뭔가를 갈구하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며 책연(笧緣)이 시작되었는데, 우연히 책의 첫 장을 넘기고선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모두 읽어내려갔을 정도로 내용이 굉장히 흥미로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껏 내가 왜 나도 이해 못 할 행동들을 했던 것인지 책에서 소개하는 수많은 사례를 보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나로선 이해 못 할 행동을 하는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상처와 아픔을 보듬을 수 있는 포용력 또한 가질 수 있었다. 완벽한 공감은 못 해도 가벼운 동감은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은 그 누구라도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푸념을 하고, 또 들어주며, 술을 한잔 기울이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해갈되지 않는 알 수 없는 갑갑함 속에 살아가는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친, 그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이 땅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 청춘들이라면 더욱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