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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엔 미역국이지

    오늘은 내 생일이다.

    늘 그렇듯 나는 이번 생일도 무심하게 흘려보냈다. 조금 더 어릴 땐 친구들과 파티 따위를 하며 놀았지만, 사실 낯간지러운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잘 맞질 않아 나이를 먹으며 그런 자리는 되도록 피하게 됐다. 애도 아닌데 귀찮기도 하고.

    내 주민등록상 생일은 오늘이지만 집에선 음력으로 생일을 챙긴다.

    부모님은 바쁘셔서 내 생일을 깜빡하셨다며(나조차도 음력 생일을 알았던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이해를 한다. 외려 바쁘신데 지금이라도 챙겨주신 게 감사하다.) 미안해하시며 뒤늦게 늘 그렇듯 용돈을 보내주셨다. 동시에 누나와 예비 매형 또한 용돈을 보내주셨다. 그래도 누나는 조금 더 신경이 쓰였는지 여러 사람의 지령을 받고서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우리 집에 와서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사주고 말벗이 되어주다가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지인들은 기프티콘을 몇 장 보내왔다.

    그렇게 또 오늘이 끝나간다.


    사실 난 물욕이 별로 없다. 적어도 이미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고, 딱히 가지고 싶은 것도 없다. 몇몇 마음이 이끌리는 것들이 없을 리는 없지만 내 성격상 그저 가지고 싶기만 한 물건 따위는 가지고 나면 하루도 못가서 흥미를 잃을 걸 알고, 몇 달만 지나면 더 좋은 게 나올걸 이미 알고 있어서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주렁주렁 무언가에 얽매이기도 싫고, 공산품 따위야 필요하면 결제만 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니 굳이 집에 가져와서 짐 덩어리를 만들기도 싫은 탓도 있다. 내 공간에서 눈에 밟히는 뭔가 보이는 걸 싫어하기도 하고.

    서두가 길었는데 사실 그래서 돈은 크게 나에게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용돈 보단 어설프고 싱거운 미역국이라도 사람의 따뜻한 온기가 있는 그런 게 나에겐 훨씬 더 간절하고 또 더 소중한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마음이나 정성은 억만금을 줘도 살 수 없는 거니까.


    이게 얼마나 철없는 투정인 걸 알고 그리고 나에게 신경을 써준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지만..

    용돈으로 받은 돈들이 내 계좌에 혼입되는 순간 그건 그냥 내 눈에 보이는 숫자 몇 개가 달랑 바뀐 것 말고는 나에겐 아무런 의미도, 감흥도 없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있으나 없으나 적어도 나에게만은 크게 달라질 게 없는걸 알기 때문에.

    그리고 생일 때마다 좋아하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케이크 기프티콘을 받고 나 또한 아무런 생각이나 의미 없이 생일에 맞춰 똑같은 케이크를 보내는 의무적인 관계도 이젠 정말 회의감이 든다. 차라리 예전엔 몸이 멀어져 떨어져 지내는 사이라면 간단히 안부 전화를 하며 축하를 전하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몇만 원 짜리 케이크 기프티콘과 생일 축하한다는 카톡 몇글자가 달랑이다. 사실은 세금 고지서를 받는 느낌이랄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냥 그렇다는 넋두리다. 나를 생각해준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너무 감사하지만, 그래도 원래 생일엔 진심 어린 축하와 그냥 미역국 한 그릇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