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 미우라 아야꼬

살며 생각하며 (보급판 문고본) 국내도서 저자 : 미우라 아야꼬 / 진웅기역 출판 : 범우사 2004.03.20 상세보기

#구절

사람들은 별 근거도 없는 것에 겁을 먹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무도 싫어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입구가 없는 집이나 깊은 방에 틀어박혀 있고 싶어 하는 못난 인간이다. 누구에게나 호의를 갖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도 만나지 않고 몰래 살고 싶은 인간인 것이다.

선의의 행동은 모두 상대편을 위해서 좋으라고 하는 것이니까 자기도 모르게 단정적이 되고 강압적이 된다.

그러니 나처럼 자기는 싫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선의에 넘쳐 있다고 하면서 우선 자기의 행동을 찬미하고는 적극적으로 남에게 작용하는 것은 매우 강압적인 행위일 것이다.

말하자면 선의도 하나의 이기주의인 것이다.

참다운 실행력이라는 것은 하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면밀한 계획과 주도(周到)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은 행동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착상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충동이라고 해도 좋다. 내일을 기다릴 수 없는 것이다. 기다릴 만한 억제력이 없으니까 참지 못하고 오늘 행동으로 옮겨버린다.

무슨 상의가 들어오거나 일을 하자는 신청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하룻밤은 생각해봐야 한다.

이치는 네 말대로인데 말이다, 아야코, 이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문제란다. 사람을 비난할 때 상대편이 변명을 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것은 안 좋아. 상대편에게 달아날 길을 꼭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론을 따져서 이겼다고 인간과 인간의 승부에서 이긴 것은 아니다.

요즘의 나는 정연한 논리 같은 것은 오히려 신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어쩌면 완전 범죄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당사자는 깨끗한 완전 범죄로 처리한 것 같지만 조그마한 일로 와르르 허물어지는 범죄 같다고 나는 느낀다.

등 껍데기나 큰 이빨 따위가 몸을 지키는 무기로 쓰인다면 멸망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스스로 자기 몸을 지키려는 생물은 빨리 멸망한다니, 무언지 인간의 세계에도 들어맞을 것 같은 이야기다.

등 껍데기를 갖고 큰 이빨을 갖고 있다는 것은 다른 자를 적으로 보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다른 자로부터 해를 입지 않겠다, 다른 자를 공격해야겠다는 적의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리뷰

설국을 읽으며 느꼈던 서린 느낌과 묘하게 닮은(그토록 아리진 않지만) 책이다.

아주 어늑하고 깊숙한데 그녀가 써 내려간 자기의 생각이 나와 많이 닮아있기도, 또 아니기도 하여서 읽으며 많이 공감하고 또 부정하기도 하며 오래간만에 재밌게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다만 무교인 내가 읽기엔 지나칠 정도로 맹목적인 신앙이 강조되어서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평점

★★★